_EBBI_ 2024. 5. 26. 00:03

"둥지 안에 있는 물은 네가 다 축내겠네. 진정하고 고개 들어봐."
 
새빨간 얼굴로 연신 기침하던 소년은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시선을 위로 올렸다. 입 좀 벌려보라는 말에 얌전히 아- 소리까지 내어본다. 음, 기도가 부었네. 이런 건 물 마신다고 나아지는 게 아닌데. 여자는 소년의 입안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말했다.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. 입을 벌린 채 말하느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장을 용케도 해석한 여자가 주머니에서 흰 천을 하나 꺼낸다. 
 
"이거 들고가서 엔지니어팀한테 마스크 만들어 달라고 해."
"마스크가 뭔데?"
"네 목구멍 속으로 먼지 들어가지 말라고 막아주는 거."
"불편할 것 같아."
"그래도 넌 해야 해."
"왜."
"기관지 약해서."
 
무심하게 말하던 여자는 팔팔 끓인 물 자주 마시고, 정회된 물이 둥지 내에 부족하다 싶으면 기침이라도 세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했다. 아닌가. 숨 쉴 때 입으로 하지 말라고 했던가 아, 둘 다일 수도 있다. 기억이 안 나는 게 당연하다. 이건 백지하가 고작 7살 꼬맹이 시절의 이야기니까. 
 
흰 천 손에 꼭 쥐고 대충 쉬고 있던 엔지 팀 아저씨를 찾아간 건 기억이 난다. 나이가 아주 많았고... 마스크라는 단어를 굉장히 오랜만에 듣는다며 반가워하기도 했다. 그렇게 손에 쥐게 된 마스크는 생각보다 거창한 물건은 아니었다. 그냥 천을 길게 잘라 양 끝에 끈 하나씩 묶은 거. 이런 게 정말 기침을 낫게 해주는 데 효과가 있는 건지 그때는 의심도 했었다.
 
어릴 적부터 툭하면 기침이 났다. 어떨 때는 얼굴에 피가 쏠려 화끈해질 정도로 심하게. 그러나 주위 어른들은 물 많이 마시라는 조언만 해줄 뿐이었다. 그럼 처음으로 백지하의 약한 기관지를 짚어낸게 그 의료부 누나인 셈인가.
 
기침이 난다고 의료부 사람을 찾아갈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. 그야 둥지 내 사람들이 의료부를 찾을 때는 그보다 더 긴박한... 그러니까 피를 봤다던가 의식을 잃었을 때였으니까. 고작 기침 좀 난다고 의료부를 찾아가는 건 오히려 지하 본인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다. 그러던 와중 기침을 연발하던 지하를 살펴보던 건 다름 아닌 그 누나였다. 아직도 이름은 모르는. 그냥 흐릿한 인상의 지금의 지하 나이쯤으로 보였던 그 누나. 
 
언젠가 그 누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. 자신의 입안을 볼 생각은 어떻게 했냐고. 이상하게 얼굴은 기억이 안 나는데, 목소리는 또렷하게 떠올라. 참 이상한 일이다.
 
"별건 아니고. 그냥 언니도 기침을 자주 하더라고. 알레르기성 기관지염은 원래 유전이 보통이지."
"언니라고? 그게 누군데."
"아 뭐... 넌 모르는 사람."
"그게 뭐야."
"가만히 있어라. 지금 네 마스크 고쳐주고 있잖아. 이거 꽤나 힘들다고."
"뭐가 힘들어. 그냥 끊어진 끈만 묶어주면 되는 건데."
"그렇게 쉬우면 네가 하지. 아니면 엔지한테 가던가."
 
그 뒤로 침묵이 이어졌다. 다시 생각해봐도 7살이었던 백지하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. 누나 말대로 아저씨한테 가면 되는데. 그나저나 7살은 맞던가. 아무튼 그때는 그냥 끊어진 마스크 줄을 이을 사람으로 그 누나밖에 생각나지 않았던 것 같다. 
 
"넌 커서 꼭 의료부 해."
"왜?"
"먼지에 예민한 거 보면 경비대나 엔지팀은 못 가지 않나 싶은데. 원래 의료부에서 제일 중요한 게 청결인 거 알지?"
"..."
"손도 자주 씻고, 웬만하면 구석엔 들어가지 마. 아, 됐다. 얼굴 들어봐. 마스크 걸어줄게."
 
이 둥지 안에서 깨끗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. 그래도 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. 그렇게만 하면 목을 조르듯 자신을 괴롭히던 기침이 멎는다는 말 때문이었다. 그래서 내가 의료부가 된 건가. 그 누나가 하래서. 아마 아닐 것이다. 먼지가 싫다는 이유로 의료부를 선택했다면 그건 그거대로 놀라운 일이다. 애초에 백지하는 의료에 재능이 있었으니까. 원래 사람은 잘하는 걸 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. 이 말을 누가 했더라. 100년 전 쓰인 어느 날의 책 내용일지도. 
 
그래. 이제 지하는  그 누나가 말하는 '언니'라는 사람이 친모임을 깨달을 정도의 나이가 됐다. 그러나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도 맞는 것이, 난 태어난 후로 부모님을 만난 적 없잖아. 모르는 사이보다 더 모르는 사이다. 막상 그 사실을 상기하면 목이 칼칼해진다. 그래서 괜히 손가락 끝으로 목 위를 짚어봤다. 존재는 했던가, 의문이 들 정도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던 엄마. 당신도 이렇게 눈보라가 심해지는 날이면 목이 아팠어? 눈이 벌게지고, 바싹바싹 목구멍이 건조했어? 
 
물어봐도 대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. 엄마도 아빠도 마스크를 만들어주던 아저씨도, 심지어 그 누나조차 모두 사라졌으니까. 애들은 꿋꿋하게 실종이라고 하던데, 지하는 알고있었다. 실종이 아니라 죽음에 더 가깝다는 것을. 
 
손 끝 먼지 하나 붙는 것도 싫어하던 때. 아이들이 뛰어놀면 항상 먼지가 풀풀 올라왔다.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먼지는 꼭, 눈 같기도 했다. 크게 들이마셨다가는 하루 중일 기침을 할 것이 분명한 눈. 그러면 괜히 마스크를 더 올려 써 보이는 것이다. 아픈 건 싫으니까 말이다.